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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 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전문의 우재혁입니다. 의사-환자-사회가 함께 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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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6. 1. 21:22 응급실24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의사가 부족하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환자 얼굴보는 시간이 2~3분밖에 안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 보험 공단이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뭐 지금 당장 고쳐지기는 힘들겠지만...

현실은 너무 암담하다

 

한 1~2주 전인가

70대 할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왔다

과거에 본원에서 심근경색으로 심장수술을 하여

심장의 기능이 정상인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분이었다

금번에 내원한 이유는

기력이 없다......

머 아주 응급이 아닌 것처럼 보일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혈당이 심하게 올라가고 몸의 균형이 흐트러져 몸의 산증이 심해진 상태였다.
(우리 세계 말로는 DKA, 탈수나 감염으로 인해 몸의 조절기능이 흐트러져 당조절 및 대사 기능이 안되는 상태이다)

 

 

포카리 스웨트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몸은 약알칼리성이라하며 알카리 이온수

몸이 원하는 물. 포카리 스웨트라고 광고했었다.

 

 

그렇다 우리몸은 원래 정상적으로 중성에서 약 알칼리성을 띤다

하지만 환자의 경우 심한 산성으로 변해있었다.

그래서 환자에게 수액치료 등을 시행해 산증을 교정하는 치료를 한 뒤

해당과인 내분비 내과에 연결을 하였고

내과에서는 내과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라고 보호자와 환자에게 지시를 하였다.

 

 


그러나

환자와 보호자는

무조건 흉부외과로 입원을 시켜달라 하였다.

 

 

그 이유는 환자의 경우 흉부외과에서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고 심장 기능이 다른사람의 절반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담당 교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무조건 흉부외과로 입원을 시켜 달란다

하지만 DKA의 경우 외과의사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내과에서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하며 최악의 경우

드물게 혈액투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내과로 입원하는 것이 맞는데

죽는 한이 있더라고 흉부외과에 입원을 시켜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과에서도 본인들이 치료하는 것이 맞다며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다가

보호자와 의사 모두 기분이 상했다

 

 

결국 보호자는 응급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응급의학과에서 개입을 했다

 

이래저래 설명을 하여 내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으나 보호자들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우리는 마지막 카드를 들었다. 암울한 의료계의 현실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병원에는 흉부외과 의사가 없었요. 낮에는 교수님들이 계시지만 밤에는 당직의사가 없는 날이 많습니다.
환자분이 입원해서 상태 안좋아지면 봐줄 의사가 없습니다. 밤에 안좋아지면 잘못하면 그냥 돌아가실 수도 있어요!"

 

그랬더니 보호자 曰

"어제도 외래진료 보고 갔는데 흉부외과 의사가 없다니 말이 되냐고!!!
인천에서 가장 큰 병원에 흉부외과 의사가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도대체 그러면 응급으로 심장 수술 해야되는 사람을 수술 못한다면 이 큰 병원의 기능은 뭐냐고!!
무조건 흉부외과로 입원시켜 주고 안그러면 집에 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집에 가겠다고!!"

 

란다...

 

 

"저도 보호자분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흉부외과 의사가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에요!"


의사입장에서는 죽으라고 집에 보낼 수는 없다.

결국 보호자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하루종일 수술하고 새벽에 겨우 주무시고 계시는 50대 흉부외과 교수님께 연락이 겨우겨우 되어

환자는 흉부외과로 입원을 하였다.

그 후 어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는 흉부외과, 외과 등 major surgeon이 너무 적다.

 

 

그래서 이런 드라마가 더 조명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일반인도 알다시피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죽을 위험성이 크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복부의 심한 타박으로 내부 장기의 출혈이 생기면 죽을 위험성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위험한 상태를 극복해보고자 시도하는 외과적 수술이 환자 상태를 호전시킬 수도 있지만

의사로서 힘써보지도 못한 채 환자는 죽을 수도 있다.

수술대에 환자를 올려놓다가 수술은 시작도 못한 채 심장마비가 와서 죽을 수도 있고

대량의 복강 내 출혈로 인해 수술실에 가는 길에 환자에게 손도 못써보고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위험한 수술을 해서 환자를 살리면 그 희열이야 너무도 크겠지만

이런 수술을 시도하다가 환자가 죽으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의사에게 묻는다. 아니 따진다

그게 현 시점의 대한민국 의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들 위험한 수술을 감당하려 하겠는가...

 

우리과에서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우리 병원 GS(일반외과)는 surgeon도 아니야. major trauma(중증 외상)환자를 수술대에 올리는 걸 꺼리는 것 같아"

 

우리 응급의학과 입장에서는 빨리 수술하여 환자가 해결되면 좋긴 하겠으나,

수술 안하면 곧 죽고, 수술해도 죽을 가능성 높은 환자를 수술대에 올리는 외과의사의 심정이란....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안그래도 트레이닝 기간에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하루종일 서있어

힘든데도 사명감으로 외과를 선택한 의사 조차도


이런 부담감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trauma surgeon(외상 전문 외과 의사)은 안하려 하고

위험 부담감이 큰 흉부외과는 의사들이 기피하게 되었다.

 

이전에 듣기로 산부인과 의사들끼리 이런 말을 한단다(산부인과도 요새는 기피과 중에 하나다. 출산율 저하, 위험성 있는 수술, 낮은 수가 등등의 원인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 좀 모아가는 것 같으면 꼭 소송 당해서 벌어 놓은 돈 다 까먹는다. 이거 뭐 컴퓨터 reset도 아니고...쩝.."

 

지금은 의사가 성심 성의껏 열정을 다해 진료하기에 버거운 시대이다.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하려하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책임을 묻고, 그 책임에 대한 보상을 위해 드는 돈을 의사 월급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부담감이 적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로만 의학도가 몰리고 있다.

 

진짜 죽을 똥 살 똥 하는 환자를 살리는 진짜 의사가 줄어들고 있다.

 

현실적인 의료 수가 제도와 탄탄한 보험 재정이 뒷바침되지 않아 의사에게 쥐어지는 돈이 얼마되지 않는다면

위험 부담큰 외과 등의 의사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며(소송 당하면 거덜나니깐)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장질환으로 수술이 필요하거나 아이를 낳으려 제왕절개를 받기 위해 외국에 가서 비싼 돈 내고 수술을 받아야되고

교통사고가 나서 복부를 다치면 그냥 죽어야 한다.


지금은 의사와 환자가 다 손해보는 시대이다

그러나 이 둘 누구도 책임이 없다.


탁상공론 중인 공무원과 비현실적 의료 수가, 보험 체계의 책임이다.


posted by EMDrmetalki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