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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 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전문의 우재혁입니다. 의사-환자-사회가 함께 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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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5. 22:18 응급실24




갑자기 내가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학교 때 채변 검사 할때 내 응X를 젓가락으로 집어 봉투에 넣는 것 조차 싫어했던 내가...

 

 

 

 

이전에 그런 일이 있다.

 

간성 혼수(간이 안좋아 암모니아 대사가 안되어 몸에 암모니아가 쌓여 의식 불명이 되는 병)

환자가 의식은 없고

응급실에서 간성 혼수를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은 관장!뿐이다.

 

의식없는 환자들은 관장약이 들어간 뒤 참지를 못하고 금방 배변을 해버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관장약을 똥X에 넣은 뒤 보호자에게 장갑과 거즈를 주고 똥X를 틀어막으라고 하던가 아니면

의사나 간호사가 여력이 되면 똥X를 틀어막기도 한다.

 

한번은 간성혼수 환자에게 관장을 해주고 보호자가 잠깐 나간다고 해서 옆에 있던 내가 똥X를 막고 있다가

다른 환자가 많아서 간호사에게 바톤 터치를 해주려고 하는데

그 찰나를 환자가 참지 못했다

 

 

 

 

 

뿌지직~~~

 

 

응아를 해버렸다.

 

관장약이 섞였으니 당연히 묽은 또옹이다.

 

 

 

 

 

내 팔과 가운에 튀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간호사 팔에도 튀어 간호사는 시계!!에 응아가 떡하니 붙어버렸다.ㅠ

 

 

 

간호사와 나...둘다 굳어버렸다....(이땐 겨우 1년차 밖에 안되었더랬지...)

울상이 되었으나 곧 보호자가 돌아오는 바람에 다시 표정을 가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에게서 돌아서 나오자 마자 가운을 갈아입고 비누로 세번 네번을 응아 묻은 내 팔을 빡빡 비벼 닦았다.ㅠㅠ

하지만 찝찝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은 저녁에 밥을 먹을 맛도 안났다. 히유~

 

그런 일이 있은 후 간호사가 퇴근하기 전에

 

"괜찮아요??비싼 시계 같던데?"

 

라고 했더니

 

간호사가 말한다...

 

 

 

"제 시계 아닌데요 머 빌린거에요...캬하하하하~~~"

 

ㅜ.ㅡ,

 

시계 주인은 아마 잘 닦아서 돌려받을테니 응아가 묻었단 사실을 모르겠지 ㅎㅎ

 

 

 

어쨌든 1년차 때는 찝찝함을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없을 만큼 바빠서 그냥 슥삭 닦고 다시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내 손에 주변사람이나 내 응아나 침이 묻는 것

 

밥알 튀는 것도 싫지만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채혈하다 환자 피가 내 손에 묻어도

 

상처를 꿰메다가 환자 피가 내 안경에 튀어도

 

이제는 환자 입에서 가래가 튀어서 나와

 

내 얼굴에 튀거나 내 입에 들어가도

 

환자가 구토한게 머리까지 튀어 뒤집어 써도

 

그냥 그런갑다 해버린다....오호

 

 

 

다른 사람 또옹을 만지고도 비누로 한번 손씻고 그 손으로 밥을 떠먹고

 

남의 발 만진 손으로 담배를 들어 물고...

 

많이 변한 것인지 무뎌진 것인지..

 

이상하게도 환자 몸에서 나온 것이나 환자 몸에 묻어 있는 것들은 이제 별로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간염환자 응아나 침, 피가 내 몸에 닿으면 나도 간염이 걸릴 수 있고

 

결핵환자 가래가 내 입으로 들어가면 나도 결핵환자가 될 수 있지만

 

이제 그냥 그러려니 해버리고 있다...

 

 

실질적인 보호장구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마스크 쓰고 진료하면 보호자나 환자가 자기를 싫어하나 하고 생각할까봐

 

마스크조차도 잘 안쓰게 되고...

 

 

그냥 의사라서...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EMDrmetalkil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