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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 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전문의 우재혁입니다. 의사-환자-사회가 함께 하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EMDrmetal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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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28. 12:05 잡다부리



개봉 첫 주에 29만 관객을 모았다는데...

대부분 그 슬픔에 동조하고
두 주인공의 사랑에 대한 감동에
눈시울을 적신것 같은데

솔직히 눈물이 날 정도가 아니었다.

'나'라는 관객은 집중을 시키지 못한 것 같다.

너무 관객의 눈물과 감동을 짜내기 위해 클라이 막스 없이 
슬픈 상황만을 잔잔하게 줄줄이 나열하였다.
-종우(김명민)의 감정 변화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텨주는 지수(하지원)
-얼굴에 내려 앉아 피를 빠는 모기를 잡으려고 움직이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인생을 포기하고 죽으려고 혀를 깨무는 상황
-애절한 마음을 말로 표현 못하고 두 주인공이 서로 이해해가는 상황

이 모든 내용들은 '약간'슬프기는 하다.

하지만
약간 슬픈 이야기를 계속 하면 무뎌질 수 밖에 없다..

차라리 몇 년동안 의식없이 누워있는 아내가 깨어날거라고 지극정성을 쏟는 임하룡 아저씨의 연기가 더 눈물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의사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의학에 관련된 내용에 집중을 하게 되는데(직업병이다...쓰읍..)
어떻게 그렇게 틀린 것이 많은지..(자문을 좀 더 잘 구하지 하는 아쉬움...)
솔직히 이건 아닌데 하면서 영화에 집중을 못하게 해 씁쓸했다.


 루게릭 병의 경우는 근육 마비가 원위부부터 마비인데
운동 마비 증상이 오는 질환들은 두가지로 나뉜다.

원위부 마비가 먼저 오는 질환 (루게릭병 같이 "운동 신경"에 문제가 오는 질환)
:원위부 마비-손가락이나 발가락 같은 작은 근육으로 움직이는 곳의 마비

vs

근위부 마비가 먼저 오는 질환(근육자체에 병이 있어 운동 마비가 생기는 질환)
:근위부 마비-허벅지나 어깨같이 큰 근육이 마비

루게릭 병(amyotrophic lateral sclerosis)은
운동신경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원위부 마비가 먼저 오는 게 맞다

근데 종우는 마지막까지 손가락은 쓸 수 있는 상황으로 설정해놓았다.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클릭해가며 인터넷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네이트온 문자도 보내더라..
실제로는 손가락 마비가 먼저 오는것이 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억지 설정


bulbar palsy에 감정변화?
극중에
"연수마비가 올테니 감정기복이 심해질 거에요"
라는 말을 담당의사가 말을 한다.

연수마비(bulbar palsy)는 말하고 삼키는 기능의 장애가 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신경학적으로는 감정변화와는 전혀 관련없다.


기관절개술(tracheostomy) 후 인공호흡기까지 달고 말을 해?
극중에 종우가 혀를 깨물어 다량의 출혈이 생겼고
아마도 그 피들이 기도로 들어가서 질식하여 호흡하기 힘들어서 
기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기관절개술을 한것으로 생각된다.

목소리를 내려면 입으로 날숨이 나와야 하는데
기관절개술을 해놓는다면 입으로는 말소리는 커녕 숨소리도 나올 수가 없다.
따라서 말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종우는 한마디 하던데~



종우의 호흡이 갑자기 멈추고, 환자가 숨을 안쉬니 사망한 것이라고 인공호흡기가 알려주어 지수가 울기 시작하는 상황
극중에 인공호흡기의 모드는 분명 CMV(controlled mode)로
환자가 숨을 안쉬어도 기계가 대신 숨을 불어넣어주는 상황이다.
CMV이면 환자가 숨을 전혀 안쉬어도 기계가 100% 숨을 쉬어주기 때문에 환자는 죽지 않는다. 인공호흡기의 전원코드가 뽑히지 않는 이상 안죽는다.

하지만 극에서는 분명히 CMV임에도 불구하고 인공호흡기에서는 종우가 숨을 안쉬니 사망한 것이라고 알려준다.ㅡ.,ㅡ

또 사망을 알려주려면 다른 영화나 드라마처럼 심전도 모니터가 "ㅡㅡㅡㅡ"로 나오게 하는게 더 나았을텐데...환자가 숨을 안쉬니 죽은 것이라고 인공호흡기가 알려주다니...

약간 어이없는 설정



하지만 이 영화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은 두가지 있다.

스스로의 병이나 죽음에 대해 체념하고 분노하고 순응하는 환자의 반응과
환자의 보호자들이 느끼는 엇갈린 감정들을
너무나 리얼하게 표현했다.


앞으로 다가올 나의 죽음에 대한 반응

"나는 곧 죽게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 환자들은 순차적으로 이런 반응을 나타낸다고 한다.
1. 충격과 부정(내가 왜 죽어?그럴리가 있어?안죽어)
2. 분노(왜 내가 죽어야돼?난 할일도 많고...더러운 세상. 운명..)
3. 협상(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4. 우울
5. 수용

1단계는 아마도 종우와 지수가 만나기 이전의 종우의 모습이었을 듯 싶다.
2단계에서 종우는 지수에게 괜한 투정을 부리고 화를 내고, 대소변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기저귀를 갈아주려는 지수의 지고지순한 모습에 괜히 화를 내며 "사랑은 개뿔!나를 동정하는게 아니냐"며 불같이 화를 낸다. 곧 닥쳐올 본인의 죽음에 분노를 한다.
3단계에서 종우는 지수에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고 다시 돌아와 주기를 기다리며, 손가락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우스를 클릭해가며 네이트온 문자서비스를 통해 지수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고 본인의 잘못을 뉘우치며 지수를 그리워한다.
4단계에서 종우는 혀깨물면 죽을 수 있는지 네이버 검색을 해보고 눈물을 흘리며 혀를 깨물기에 이른다.
5단계는 종우가 의식을 잃어서 그 과정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의식없이 장기적으로 누워있고, 먹고 싸고하는 등의 기본적인 행위를 스스로 할 수 없는 환자의 보호자들이 느끼는 감정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들고 소생가능성도 없으니 환자가 죽더라도 자의퇴원을 하겠다며 의사에게 항의를 하는 옆 침상의 보호자
-의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본인 아내는 반드시 의식이 돌아올것이라며 옷을 입히고 가발까지 씌워가며 사랑을 나누는 임하룡 아저씨
-꿈에서 '9시가 되면 의식이 깰테니 반드시 만나자고 남편이 말을 했다며' 할머니가 9am의 기적을 기다리는 모습



너무 비판적으로 영화를 본 탓일까
영화의 집중도는 낮았다.
눈물을 흘리고 싶어 영화를 봤지만
실패했다.

posted by EMDrmetalkiller
2009. 7. 24. 13:48 응급실24




지리한 장마....

 

눈앞 1m도 안보일정도로 비가 오던날

 

새벽 1시경 근무중 잠깐 쉬려고 밖으로 나와 빗소리를 듣고 있던 중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 근처 사거리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는데요. 중환자가 여럿이래요 좀 도와주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요란스러운 119 싸이렌이 이곳 저곳에서 섞여서 들려왔다.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119대원들이 다급히 뛰어들어왔다.

 

바로 글러브를 끼고 환자에게 다가갔다.

 

이미 숨은 끊어진 상태였고 팔 다리 한군데도 성한 곳이 없고 뼈가 돌출된 곳도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던 중 119대원에게 물어보니

 

"빗길에 차 한대가 미끄러진 것 같은데 중앙선을 넘어서서 반대쪽에 오던 차와 정면 충돌한것 같다는데요

이 환자 말고 너댓명 더 여기로 올껀데 다 상태 안좋아요 부탁드려요"

 

안습.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번째 환자가 도착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숨이 끊어져있으며 갈비뼈가 거의 전부 부러져있었다.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손이 모자라서 병동에 있는 후배들에게 구원 요청을 해서 사람을 더 불러모았다.

 

세번째 환자 도착

 

역시나 사망 상태. 심폐소생술

 

네번째 환자 도착

 

의식없으나 심장만 겨우 뛰고 있는 상태

 

다섯번째 환자 도착

 

다행히 의식은 있으나 혼수상태

 

 

마지막으로 온 119대원에게 물어보니 다행히 다섯명만 다쳤단다.

 

응급실에 있던 다른 환자들은 제쳐두고 1시간가량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여러가지 치료를 하였으나

 

결국 처음에 온 세명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

<자료화면; MBC 닥터스>

누구인지 이름도 모르는 다섯명의 환자.

 


차량 두대에 5명타고 있었는데

 

3명 사망(60%사망)

 

2명 중상, 혼수상태

 

두시간여만에 신원이 파악되어 보호자들이 도착했다. 환자들은 세명의 10대, 택시기사, 택시 승객이었다.

 

"엄마가 밤늦게 비많이 온다고 나가지 말라그랬는데 말안듣고 나가더니 이렇게 되었니!!ㅠ"

"우리아들 살려줘요!!"

"여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이렇게 가는거야!오늘같이 비오는날 술을 왜 먹어!!"

"OO야, OO야 정신좀 차려봐"

"아빠 왜 이래! 눈좀 떠봐!"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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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MDrmetalkiller
2009. 6. 14. 23:10 응급실24




 

사체 발생 보고서에

 

"우재혁"

 

하고 사인을 하는 것은 늘상 괴롭다.

 

응급실에서 자주 보는 응급실 내원 환자의 사망..

 

누구에게는 아버지나 어머니일 수도, 남편이나 부인일수도, 아들, 딸일수도...

 

 

그렇기 때문에 내 눈앞에서 환자 보호자에게 사망 선언을 하는 것은 참으로 가슴아픈일이다

 

내 부모, 자식이 저 환자라면 내 마음은 어떨지...

 

병원에 죽어서 들어온 DOA(death on arrival)이라면 조금 덜하지만

 

내원시에는 죽지 않은 상태였으나 응급실이나 병동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늘 씁슬하다.

 


오늘

 

 

봄비 후 다가온 차가운 바람마냥 그 가족이나 내 마음은 횡한 기분으로 가득찬다.

 

몸의 차가움이야 옷깃을 여며 막으려 애써 볼 수 있으나

 

내 가족의 죽음에서 오는 싸늘한 시신과 싸늘한 마음은 덜어낼 방법이 없다.

 

 


내가 응급의학과를 택한 이유가

 

죽은 사람도 살릴 줄 아는 의사

 

"진짜 의사"

라는 것이었는데

 

 

오늘은 내 앞에서 누군가의 아버지가 죽고 말았다.

 

응급실에 들어올 때부터 일견 봐도 상태가 안좋아보여서

그 환자를 담당하고 있던 후배에게 잘 보라고 주지를 시켜놓았는데

 

결국은 우리가 손써도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러

 

네명의 의사가 달라 붙어

 

구슬땀을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2시간 가량했어도

 

잠시 ROSC(심장마비가 왔다가 다시 혈액 순환이 회복되는것)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하늘은 맑고 높지만

싸늘한 봄 바람을 맞은 듯 마음은 시려온다

우울함을 달래려 쓰디쓴 커피를 마셔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 강한 속쓰림 뿐이다.

posted by EMDrmetalkiller